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양호 대전 (문단 편집) == 양측의 전력 ==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E6%A8%93%E8%88%B9.jpg|width=350]][br]''' 누선(樓船)[* 무경총요(武经总要) 수록]''' || || [[파일:external/oi67.tinypic.com/20p10y.jpg|width=230]][br]''' 복선(福船)[* 명나라 간행물 삼재도회(三才圖會) 수록]''' || 진우량은 이 싸움에 앞서, 그야말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전력을 동원하였다. 그는 즉시 누선 수백여 척을 제조하였는데, 문제는 그 누선이 모두 '''높이가 십여 장(30m)이나 되고, 붉은 칠로 장식하며, 배마다 3겹으로 만들어, 말달리는 마구간(馬棚)까지 달려있던''' 충격적인 물건이었다는 것.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모두 기가 막혀서 "이렇게 큰 배는 생전 처음 봄."이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임팩트였다. 또한 남창 공략에서는 비제(飛梯)[* 운제. 공성용 사다리]와 충차(衝車) 등을 있는대로 동원하였다. 얼마나 진우량이 이 싸움에 모든 전력을 다 동원하였는가 하면, 명사 진우량 전에서는 '''가족과 백관을 싣고, 모든 예봉으로 남창을 공격하였다.'''라는 언급이 있다. 기둥뿌리까지 뽑아서 진격한 것. ~~이건 무슨 [[함대결전사상]]에 [[거함거포주의]]까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전력으로 병력의 숫자에 대해서인데, 명사 태조본기에서는 진우량의 병력에 대해 '''60만'''이라는 충격적인 언급이 있다. 다만, 진짜로 60만이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60만이라고 칭했'다는 언급이다. 이른바 호왈(號曰)이라는 것. 그러나 호왈이라고 해도 60만이라는 언급을 할 정도면 엄청난 대군임은 분명하다. 이에 맞서는 주원장은 20만 대군을 동원하였다.[* 중국을 말한다, 후민『신원문화사』] 물론 이 역시 어느정도 과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우량보다 적은 병력이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병력의 숫자보다 주원장이 진우량과 결정적인 차이가 났던 부분은 바로 함선의 차이. 진우량은 거대한 몽둥(艨艟)선 위주로 함대를 꾸렸으나, 이에 주원장은 이에 비해 가볍고 대신에 속도가 있는 배 위주로 함대를 보유했다. 싸움에 들어가기 이전까지, 눈앞에 보이는 함선의 거대한 크기 차이에 모두가 주눅이 들었으나, 실제 싸움에서 이는 주원장이 승리를 거두는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